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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보건/국제개발협력 분야 종사자 인터뷰

임형준 (유엔세계식량계획, 한국사무소장)
  • 작성자국제보건연구센터
  • 날짜2021-05-22 17:32:10
  • 조회수362

[임형준 소장 (유엔세계식량계획 WFP 한국사무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유엔세계식량계획(World Food Programme, WFP) 한국사무소의 사무소장 임형준입니다. 2001년 국제기구 초급전문가(Junior Professional Officer, JPO)로 WFP에 들어온 이후 중남미, 아프리카, 아시아 등 3개 대륙에서 기아와 빈곤의 최전방에서 일하였고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WFP 본부에서의 근무를 거쳐 2011년 11월 WFP의 한국 사무소장으로 발령받아 ‘기아퇴치 운동에 선도적 역할을 하는 대한민국 만들기’란 사명을 품고 지금까지 소임을 다하고 있습니다.

 

현재 일하고 계시는 기관과 맡고 계신 업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유엔세계식량계획 WFP는 가장 헐벗고 굶주린 곳을 돕는 세계 최대의 인도적 지원기구 입니다. 2030년까지 ‘기아 없는 건강한 세상(제로 헝거)’을 달성하기 위해 최전방에서 일하는 WFP는 UN에서 식량안보, 물류, 통신을 리드하며, 매년 전 세계 80여 개국의 1억 명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WFP는 긴급 구호를 통해 생명을 구하고, 분쟁과 재난, 기후 위기에 노출된 지역사회의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해 식량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WFP는 대한민국과도 깊은 인연이 있습니다. 정부의 긴급 식량 요청으로 1964년 대한민국에 들어와 1984년까지 20년간 동안 긴급구호, 영유아 임산부 영양 지원부터 치수, 취로, 사방사업까지 총 23개의 국가사업에 참여해 한국을 도왔습니다. 일례로 풍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제주도의 순환도로는 WFP의 지원으로 건설되었습니다. 또한 한국은 제로 헝거를 성취한 가장 빛나는 사례(Shining Example)로 꼽히기도 합니다. 최빈국이 식량 원조를 20년 만에 졸업하고 세계 최대의 인도적 지원기구의 11번째 공여국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자랑스러운 대한한국의 WFP 사무소를 10년째 이끌어 왔습니다. 한국을 처음 맡았을 때 공여국 순위 50위 밖이었던 우리나라가 작년 기준으로 정부 중 상위 10위 안에 들 수 있었고 연 850만 명을 도울 수 있는 규모로 성장하여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어떤 계기로 국제보건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사람은 자기가 태어나는 나라를 정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20대 초반 3년 반 동안 80개국을 배낭 하나 메고 돌아다니며 목격했던 나라 간의 빈부 격차의 현실은 충격적일 정도였습니다.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을 가보면 사람들이 너무나 풍족하게 살았는데 그곳에서 비행기로 불과 몇 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곳에는 생지옥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사람들, 전쟁터에서 하루하루 생존을 위해 절규하는 사람들을 직접 봤었고 아프리카에서는 학교에 있어야 할 아이들이 저를 따라다니면서 돈과 음식을 구걸하고 한 눈이 멀고 다리를 못 쓰는 한 아이가 저를 붙잡고 음식을 달라고 우는 모습을 보았을 때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다 아프리카의 말라위로 향하는 배 위에서 사흘간 굶으며 배고픔의 고통을 직접 깨달았고 그 후 배에서 내려 어떤 마을로 갔는데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 광경을 보게 되었습니다. 신기한 건 땡볕에 줄을 서 있는데도 사람들이 굉장히 행복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지금 제가 일하고 있는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서 식량을 나누어 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때가 제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던 것 같습니다. 당시 만 23세였고 유엔의 “ㅇ” 자도 모르던 제가 바로 그 모습을 보고 내 남은 인생은 WFP에서 일하며 배고픈 사람들을 도와야겠다고 결심했던 계기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국제보건 관련 업무 또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온두라스에서 모자보건사업 책임자로 근무했었는데 극심한 가뭄이 들어서 아이들의 영양실조가 급증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가뭄지역을 발이 닳도록 뛰어다니며 긴급 급식소를 운영하는 중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때 야디라라는 18개월짜리 여자아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난해서 엄마가 먹을 것도 제대로 못 주고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뒤지거나 구걸로 겨우 연명을 하고 있었는데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다리를 보니 지금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이 아이는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아이를 살리리라 각오를 하고 특별히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당장 소아병동에 옮겨 치유식을 먹이고 병원에 근무하는 분들께도 잘 돌봐달라고 각별히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두 달 남짓 지나니 야디라의 얼굴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오고 얼굴에 미소가 다시 돌아와서 건강을 되찾고 있었습니다. 탈무드에서 “한 생명을 구하는 것은 온 세상을 구하는 것과 같다”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생생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WFP가 현장에서 도와서 생명을 되찾고 미소 짓는 아이들을 떠올릴 때 제 피가 끓고 가슴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국제보건 업무를 수행하시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지요?

기니 비사우에서 근무할 때 세네갈 정부군과 카사망스 반군들이 충돌하며 대규모 난민사태가 발생했습니다. 현장에 도착하니 한 가구당 60-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와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있었습니다. 당장 식량을 보내줘야 하는데 WFP 창고에도 충분한 식량이 당장 없었기 때문에 식량을 구하느라 백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72시간 이내에 식량을 가져다줘야 하는데 유일한 해결책은 정부 비축미를 빌리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장관님을 스토킹하다시피 쫓아다니며 사정을 해서 식량을 난민 지역에 가까스로 보낼 수 있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곤 합니다.

 

그렇다면,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WFP의 현장에 가면 항상 가슴이 뜁니다. 우리의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 느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학교 급식 현장입니다. 르완다에서 만난 한 아이는 학교에 오가는 데 4시간이 걸린다고 얘기했습니다. 왜 그렇게 오랜 시간을 걸려 학교에 오느냐고 했더니 집에는 먹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그런데 학교에 오면 밥을 먹을 수 있고 공부까지 할 수 있으니 너무 좋다는 겁니다. 실제로 한 끼의 이 밥이 아이들의 미래를 완전히 바꿀 수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 때 케냐 IOC 위원이었던 폴 테라갓씨가 저희 사무실에 오셔서 “오늘의 나는 WFP의 학교 급식이 만들었다”며 진심 어린 감사를 표시하셨습니다. 본인도 배가 고파 밥을 먹으러 학교에 가기 시작했는데 학교까지 거리가 멀어 뛰어다녔고 자신의 큰 달리기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겁니다. WFP의 학교 급식이 없었다면 자신은 지금도 케냐의 한 빈촌에서 끼니 걱정을 하며 살고있을 거라고 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작은 도움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습니다. WFP 학교 급식이 한 끼 280원, 1년 55,000이면 한 아이를 도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좀 좋은 식당에서 한 끼 먹을 비용으로 한 아이를 1년 내내 학교에서 밥을 줄 수 있다는 것이지요. (Share the meal: https://sharethemeal.org/ko/) 밥을 배식해주면 아이들이 정말 흥분되고 기대되는 표정으로 줄을 길게 서서 밥을 차례로 받아먹습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그때만큼 기쁠 때가 없습니다.

 

국제보건 사업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거나, 수행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WFP의 슬로건은 “right food, right people, right time”입니다. 가장 적합한 식량을 적합한 수혜자에게 가장 적기에 지원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재원이 제때 확보되지 않아 기회를 잃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리 계획을 잘 짜고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공여국에서 지원을 잘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국제보건 이슈 중 특히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코로나 팬데믹이 헝거 팬데믹을 촉발하면서 작년 한 해 동안에 위기 기아인구가 1억3천5백만에서 2배가 증가했습니다. 올해 기아 인구가 9억 명이 넘고 1억5천만 명은 전적으로 인도적 식량 지원에 의존하며 3천만이 넘는 사람들이 대기근의 위기에 가까운 대단히 엄중한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특히 임신 직후부터 만 2세까지의 첫 1,000일은 아이의 운명을 결정짓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짧은 기간에 영양이 부족하면 어린이의 신체와 두뇌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주게 되고 평생 장기 질환에 시달릴 수 있습니다. 특히 만 2세가 지나면 이러한 큰 데미지는 회복이 불가능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WFP는 임산부, 수유부, 만 2세 이하 영유아의 지원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보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세상에 여러 가지 직업이 있지만 배고픈 사람들 밥 주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저는 너무 좋고 자랑스러웠습니다. 제가 배낭여행을 떠날 때 화두는 “어떤 일을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였는데 세상에 벌어지는 갖가지 참상을 직접 목격하며 “기아, 빈곤은 너무나 거대한 세계적인 문제지만 한 개인으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만을 위한 ambition이 아니라 세상을 위한 aspiration을 가진 분이라면 국제보건 분야는 정말 큰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능력과 열정을 겸비한 많은 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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