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보건/국제개발협력 분야 종사자 인터뷰
강미주 (국제협력사업단, 기획책임관)

관리자 2023-01-01 383

  • [강미주 기획책임관 (국제협력사업단)]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2016년부터 4년간 가나의 주립병원인 Greater Accra Regional Hospital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CIA)의 글로벌협력의료진으로 근무했고 2020년부터 국립암센터에서 코트디부아르 국립암센터 건립사업 중 교육연수사업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는 간담췌외과 전문의 강미주 입니다.

     

    현재 일하고 계시는 기관과 맡고 계신 업무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코트디부아르는 한-코 EDCF 협력 사업으로 코트디부아르 국립암센터 건립사업을 진행 중이며, 한국의 국립암센터는 이 병원에서 일하게 될 전체 의료진과 행정직의 교육을 총괄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내년에 진행할 초청연수와 이후 36개월간 진행될 현지 파견교육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국제보건(또는 국제개발협력)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외과 전공의 시절 KOICA 협력의사로 근무했던 외과 선배들의 경험을 들으면서, 나중에 국경없는 의사회에서 일하면 좋겠다는 막연한 희망을 가졌습니다. 또한 한국전쟁 이후 시설복구와 장비 지원에 그치지 않고 장기간에 걸친 의료인력 역량강화에 중점을 두었던 미네소타 프로젝트가 한국 의료 발전의 초석을 놓은 과정을 인상깊게 보았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 한국 병원의 모습이 담긴 사료를 통해 부족한 물자와 기술적 난관을 극복해 온 선배 의료진들의 노고를 간접 경험할 수 있었고, 우리 선배들이 겪었던 뼈아픈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곳이 있다면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장 보람을 느끼고 기억에 남는 국제보건(또는 국제개발협력) 관련 업무 또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요?

    저는 가나 보건청의 요청을 받아 당시 가나에서 널리 시행되지 않았던 복강경 수술을 정착시키기 위해 수술 장비와 기구 구매, 수술 술기 및 장비 유지보수교육 프로그램 운영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복강경 수술 도입 사업을 4년간 진행했습니다. 의사를 대상으로 한 124회의 수술 술기 시뮬레이션 교육과 5회의 동물 실습, 간호사를 대상으로 한 17회의 수술 장비 유지보수교육에 123명의 의사와 연인원 175명의 간호사가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며, 특히 의공기사, 물품구매 담당부서 직원, 장비업체 직원들도 교육에 참여하도록 하여 장비 유지보수 및 소모품 수급과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또한 타병원 의료진이 교육과정 수료 후 본인들이 근무하는 병원에서 복강경 수술을 처음 시작하는 경우 지원을 나갔습니다. 이에 힘입어 저희 병원에서는 2017년 0% 였던 현지 의료진의 복강경 수술 집도 비율이 2018년 81.2%, 2019년 94.5%까지 증가하여 현지 의료진의 기술 독립성이 궤도에 오르는 것을 확인했고, 지원 나갔던 외부병원 중 3곳이 현재 자체적으로 복강경 수술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교육을 시작할 때에는 과연 올 사람이 있을지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외과와 산부인과 전/현직 과장을 포함한 시니어 의료진들이 자신들부터 참여해야 젊은 의사들이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1기 교육생이 되기를 자청해왔던 날의 고마움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현지 술기 교육기관이 자체 기금과 참가비로 동물 실습을 진행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와 교육과정 계획을 수립하고 운영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이 교육과정들은 모두 가나의사협회 공식 교육프로그램으로 등록되었고, 지속적으로 교육과정이 잘 운영되기를 바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가나에 복강경 수술 도입이 필요했던 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의문이 남아있습니다. 복강경 수술은 초기 자본 투자는 물론 지속적인 유지관리비용이 필수적인데, 개복 충수돌기 절제술이나 제왕절개 수술도 제 때에 받지 못하는 환자들이 많은 상황에서 과연 복강경 수술을 도입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설명하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료 접근성 향상에 못지 않게 현행 의료의 질적 개선도 중요하다는 측면에서 실마리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실제로 지나고 보니 직접적으로 수술 술기를 익힌 의료진과 수술을 받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된 것보다, 수술 전후 진료 과정을 표준화하고 수술하기 전 술기를 미리 연습하며 수술 장비와 기구를 지속적으로 유지보수 한다는 개념을 전체 의료진이 공유하게 되면서, 보다 양질의 의료를 체계적으로 준비해보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더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저 역시 복강경 수술이 선진 기술이어서 반드시 전수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활동국가와 기관 구성원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던 복강경 수술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병원의 전반적인 진료 과정에 대해 같이 토론하고 고민할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고, 저도 한국과 다른 나라의 의료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국제보건 업무를 수행하시며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요?

    양질의 병원단계 의료는 여러 진료과와 직종의 유기적인 역량강화가 필수적입니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외과 진료를 위해서는 내과, 영상의학과, 병리과, 마취과, 간호사, 의공학과, 물품구매부서, 그리고 병원 운영진과의 협력이 필수적입니다. 다행히(?) 가나에서는 복강경 수술이 도입 초기였기 때문에 제가 여러 분야의 교육을 겸할 수 있었지만 조금 더 궤도에 오른 후에는 한 분야의 의료진이 다방면의 전문지식을 감당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폭넓은 분야에 걸친 백업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해외에 파견된 한 명의 의료진이 국내에 도움을 청할 수 있는 통로는 매우 좁고 지속성에도 한계가 있어 역부족을 많이 느꼈습니다. 3년 동안 다양한 분야의 한국 의료진이 파견될 코트디부아르 국립암센터 교육연수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봅니다.

     

    그렇다면, 가장 보람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2017년 2월 가나 주립병원 역사상 처음으로 외과에서 복강경 수술을 한 이후, 차츰 병원 내 다른 진료과는 물론 타병원에서도 수술례가 늘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장비 사용에 익숙해진 현지 의료진들이 부속기구를 이용하여 위/대장내시경, 자궁경, 방광경 및 관절경 등을 자체적으로 시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고, 한 분야에서의 시도가 얼마나 다양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지를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한편, 의료진간의 연계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가나였기에 뜻이 맞는 현지 의료진들과 함께 2년여에 걸친 준비모임 끝에 2019년 제 1차 가나 간담췌학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자존심과 권위의식이 대단히 높다고 알려져 있는 가나 의료진들이지만, 이 모임에서는 언제나 ‘우리는 경쟁을 하기보다 한정된 자원과 인력으로 보다 질 높은 의료를 구현하기 위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생각이 바탕에 깔려 있었습니다. 특히, 많이 경험해보지 못한 수술을 하게 되는 경우에 병원 간 수술 기구 공유는 물론, 여러 병원 의료진들이 함께 수술에 참여해서 서로의 경험과 기술을 나누자는 논의를 하던 날의 뭉클함은 잊을 수 없습니다.

     

    국제보건 사업이 효과적,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선행되어야 하거나, 수행단계에서 반드시 필요한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느 나라에서건 외국인의 힘만으로 일을 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위계질서가 강하고 관행에 의존하는 경향이 큰 보수적인 병원에서 현지 동료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프로젝트의 시행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희 병원에서 복강경 수술이 빠른 시간 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KOICA의 의료진 파견과 나란히 진행된 KOFIH의 이종욱 펠로우십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4년동안 5명의 의사와 4명의 간호사가 복강경 관련 연수를 받고 귀국하였는데, 이 과정을 통해 복강경 수술은 ‘외국인 의사가 주도하는 특별한 수술’에서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수술’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병원 의료진의 경우 수술 장비가 없어 배워온 복강경 수술을 수년 째 한 번도 시행하지 못하거나, 병원 안에서 도와줄 사람이 없어 홀로 고군분투하다 지쳐서 수술을 포기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있었습니다. 한편, 제가 근무했던 병원의 예를 들자면 내시경 자동세척기의 세제가 없어 간호사들이 손으로 세척을 하며 독한 소독약 증기 때문에 만성 기침을 달고 살았지만 이것은 소액의 수리비나 소모품 구입비용이 없어서 생긴 문제가 아니라 병원 운영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의료진 역량강화 사업은 비교적 장기간 일정한 주제를 가지고 진행하되, 의사나 간호사 외에도 엔지니어, 테크니션, 행정인력 등을 두루 포괄하는 팀을 구성하여 교육하고 사후 적용 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미리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대상과 방향이 조금씩 다른 다양한 공여기관 프로그램간의 연계로 시너지 효과를 얻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국제보건(또는 국제개발협력) 이슈 중 특히 주목하고 관심을 가져야 할 주제는 어떤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병원까지 도착할 수 있는 환자의 숫자가 매우 적고, 그 중에서도 수술적 치료는 비용대비 효과가 낮다는 편견 때문에 외과적 질환에 대한 치료는 국가보건의료정책의 주된 관심사가 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근래에 이르러 전세계 질병부담 중 30% 이상이 수술적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는 자각이 이루어지면서 국제보건분야에서 외과의 중요성이 차츰 강조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세계 HIV/AIDS, 말라리아, 결핵으로 인한 사망을 합한 것보다 외과적 치료를 받지 못해 발생하는 사망이 6배 많으며(Meara JG, et al. Lancet 2015), 가나에서는 서혜부 탈장을 치료하지 않았을 때의 DALY (Disability Adjusted Life-Years)가 말라리아나 설사와 유사한 수준이며 결핵의 2배인 것으로 조사된 바 있습니다(Beard JH, et al. World J Surg 2013). 주지하다시피 의료진 양성에는 시간이 많이 걸리며, 시설과 인력이 갖추어져 있지 않은 병원으로 환자를 이송하는 것은 ‘relocating mortality’에 불과함이 지적되기도 했습니다(Patel S, et al. Glob Health Sci Pract 2016). 따라서 병원단계 의료, 특히 외과 필수수술 역량 강화에 대한 관심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현지 의료진이 주축이 되는 의학연구 지원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매주 컨퍼런스를 할 때, 현지 동료들은 왜 우리 지역이 아닌 유럽이나 미국 데이터를 인용해야만 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와 사뭇 다른 동기에서 출발하는 수요가 있었기에 의학연구모임을 시작하여 지금도 매주 현지 동료들과 화상회의를 갖고 다양한 연구 주제에 대한 문헌 고찰, 데이터 수집 및 통계 분석, 논문 작성 등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또한 코트디부아르 국립암센터 교육연수사업에는 임상분야 연구 뿐만 아니라 암등록통계사업 등에 대한 내용을 포함하여 보다 정확한 현황 파악에 기반한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지원할 예정입니다.

     

    개발협력 및 국제보건에 관심을 갖고 있는 후배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제가 국제보건영역에서 일한다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고, 단지 조금 다른 환경에서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할 뿐입니다. 다만, 중저소득국가에서 의료진으로 일한다는 것이 나의 소중한 직장과 경력, 가족과 친구, 안정적인 일상과 경제생활, 그리고 앞날을 포기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고, 또 이런 부분에 대해 너무 걱정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비록 제가 직접 남극에 가서 쇄빙선을 타지 않더라도 분리수거를 열심히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더 많은 의료진들이 다양한 층위에서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창구가 더 많이 생기기를 희망합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말씀 대단히 감사합니다!